한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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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상교, 동일도본사 전리대행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
이칭
  • 경화(景化)
  • 호정(湖亭)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92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7년(고종 4)
  • 출생지함경북도 경원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정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상교, 동일도본사 전리대행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

내용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화(景化), 호는 호정(湖亭). 함경북도 경원 출생. 16세 때 노령(露領) 연추지(延湫地)로 이주하여 개간활동을 하였다.

1906년이상설(李相卨)이 간도 용정촌(龍井村)에 서전의숙(瑞甸義塾)을 세우자 숙감(塾監)으로 시무하였고, 다음해 러시아 연해주의 대표적인 한인 마을 연추(煙秋, 시모노보)로 이주하여 한인학교의 시초인 선흥의숙(鮮興義塾)을 세워 청년들을 교육하였다.

1912년 경 대종교를 신봉하여 1913년 음력 8월 6일 참교(參敎)의 교질을 받았다. 그해 시교원을 자처하여 길림성 의란도 밀산(吉林省依蘭道密山)으로 이주한 뒤 시교당(施敎堂)을 개설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한흥의숙(韓興義塾)을 세웠는데, 북만 일대의 한인교육기관으로서 처음이었다.

1914년 지교(知敎), 1921년 상교(尙敎)에 올라 동일도본사(東一道本司) 전리(典理)를 대행하였다. 1922년 청구(靑溝) 이북, 연해주 이서의 교무를 맡아서 활동하던 중 비적들의 습격을 받아 가족과 함께 참사를 당하였다. 뒤에 생전의 공적이 인정되어 정교(正敎)로 추승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가 추증되었다.

정부는 2009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 - 『대종교요감(大倧敎要監)』(대종교총본사, 1983)

  • - 『대종교중광육십년사(大倧敎重光六十年史)』(대종교종경종사편수위원회, 대종교총본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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