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상도 수군통제영(水軍統制營)이 있던 곳이다. 한산도 북서부 해안선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는데 제승당(制勝堂) · 충무사(忠武祠) · 한산정(閑山亭) · 수루 등이 있다. 해안 입구의 산 위에는 한산대첩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기념비 앞쪽의 바다에는 거북선을 본뜬 등대가 세워져 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선조 25) 5월과 6월에 경상도의 옥포 · 합포 · 적포 · 당포 · 당항포 · 율포 등의 해역에서 적을 격파했다. 7월에는 전라좌 · 우수영과 원균(元均)의 전함을 합하여 총 55척의 전함을 이끌고 왜병의 적선 73척을 한산도로 유인, 괴멸시켰다.
이 해전에서 적선 47척이 불타고 12척이 나포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렸는데, 이를 ‘한산대첩’이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왜적은 완전히 기세가 꺾여 해상 침투는 물론 육지와의 보급로 및 퇴로가 차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 뒤 이순신은 1593년 7월 한산도에 수군 본영을 만들고 8월에는 삼도 수군통제사에 제수되어 둔전(屯田)을 개간해서 곡식을 경작하고 무기와 전함을 만들고 수리하는 등 자급자족으로 군비를 충당하고 군영을 유지해 나갔다.
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섬을 떠날 때까지 이순신은 3년 8개월 동안 한산도에서 군영을 지휘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원균이 지휘하던 수군이 왜병에게 몰리게 되자 경상우수사 배설(裵楔)이 한산도 본영에 불을 질러 모든 군영이 폐허가 되었다.
1740년(영조 16)에 통제사 조경(趙儆)이 옛터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현재의 제승당은 1932년 통영의 유지들이 다시 세운 것이다. 1976년 제승당을 포함한 일대의 유적들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확장, 정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