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7월 민족정신 고취와 지식보급을 목적으로 장기영(張基永)·김하구(金河球) 등이 창간하였다.
총무에 전일(全一)이 취임하여 제74호까지 순조롭게 발행되었으나, 인쇄소관계로 약 4개월 동안 휴간하였다가 1919년 3월 21일자 제75호로 다시 속간되었다.
이 신문에 대하여 하와이에서 발행되던 『신한민보』는 1918년 1월 10일자에 「ᄒᆡ삼위 한인신보를 사보시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하여 “근일 ᄒᆡ삼위 우리 사람의 정형을 아시려오. 백만동포의 크게 활동하는 진상을 들어시려오.”라고 광고하였으며, 상해(上海)에서 발행되던 『독립신문』도 1920년 1월 22일자 기사에서 『한인신보』에 대하여 보도하였다.
이와 같이, 이 신문은 그 당시 그 지역을 비롯한 해외의 한인들에게 자주민족정신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