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만주의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발대식을 가지고 출범한 민족운동단체인 한족회(韓族會)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주필은 이시열(李時說)로서 그 논지는 주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데 있었으며, 판형은 등사판인쇄의 타블로이드형으로 2∼4면의 국한문 주간지였다.
한족회의 활동에 따라 발행소를 여러 번 옮긴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삼원보에서 통화현(通化縣) 배달촌(倍達村)으로 옮겨 제호도 『신배달(新倍達)』로 개제하여 월요일·목요일 주 2회 발행하였다.
약 2년간 존속하였는데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신문』은 1920년 2월 3일자에서 “동년 1월 16일자로 성경성관전현(盛京省寬甸縣:瀋陽)에서 발행되는 『한족신보』가 중국관헌의 수색에 의하여 인쇄기와 문서를 압수당하였다.”고 보도하였는바, 그 뒤 속간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