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678년(문무왕 18)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의상이 영주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할 때 기둥이 넘어졌다. 그 이유가 지리적 여건 때문이라고 본 의상은 소백산 남쪽 기슭에 있는 주마산의 말머리를 진압하기 위해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1803년(순조 3) 근천(謹天)이 법당을 중건하였고, 1808년 불량계(佛糧契)의 도움을 받아 선당(禪堂)을 중건하였다. 1932년 주지 취운(翠雲)이 요사채를 중건하였고, 1934년 주지 덕기(德奇)가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 절은 원래 한대사(寒大寺)라고 불렸던 사찰로 불량계 · 등촉계(燈燭契) · 위선계(爲先契) 등을 통하여 사찰의 발전과 수행을 도모했던 대표적인 곳이며, 지금도 그에 관련된 서문(序文)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전소되고 근년에 세운 요사 2동과 법당인 유리광전(瑠璃光殿:藥師殿) · 산신각 등의 당우들만이 있으며, 옛날의 석축도 다 헐리고 터만 남아 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1980년 보물로 지정된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1992년 보물로 지정된 금동 자물쇠 및 쇠북과 197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중 철불은 높이 1.53m의 약사여래로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865년(경문왕 5)에 건립된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다 그 연대가 더 오래되고, 우아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이 불상과 같은 때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3.56m의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후대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