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문익(文翼). 정주 출신. 한흥보(韓興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웅태(韓雄泰)이고, 아버지는 한순빈(韓順彬)이며, 어머니는 김정만(金鼎滿)의 딸이다.
‘한효자(韓孝子)’로 일컬어진 효자이기도 하다. 1800년(정조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전적 등을 지냈다.
당시 이조에서 그의 청직한 성품을 알고 사헌부나 사간원의 관직에 임용하고자 하였을 때, ‘이름있는 관직을 얻게 되면 잇속[利]을 불러오게 되고 잇속을 가까이하면 의(義)를 모두 잃게 되는 것’이라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홀로 적진에 나아가 난군(亂軍)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하다가 살해되었다. 백경한(白慶翰)·임지환(林之煥)과 더불어 청북삼렬(淸北三烈)이라 일컬어졌으며,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향리에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