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광헌고 ()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의 문인, 이미의 시 · 소차 · 교서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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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인, 이미의 시 · 소차 · 교서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개설

8권 5책. 필사본. 저자 생전의 필사로 보인다. 서와 발이 없어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서지적 사항

『함광헌고』 권1·2는 외종제 이중호(李仲浩)의 시 700여 수, 권3∼8은 시 1,250여 수, 소차(疏箚) 16편, 서(書) 5편, 상량문 1편, 설(說) 1편, 전(傳) 2편, 교서 6편, 서(序) 8편, 제문 6편, 묘지 2편, 비명 2편, 애사 2편, 발(跋) 1편, 치제문 2편, 시 300여 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및 평가

『함광헌고』의 시 가운데에 「대명구궁인인(大明舊宮人引)」·「등석사(燈夕詞)」·「미인사(美人詞)」·「잠부사(蠶婦詞)」·「규원(閨怨)」·「영미인창(詠美人牕)」 등의 여러 작품은 적절한 비유와 함축이 돋보이며 서정성이 짙다. 「실세탄(失勢歎)」·「종군오경전(從軍五更轉)」·「요장군편(姚將軍篇)」 등은 장편시로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유감 없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그밖에 다양한 형식과 폭넓은 소재의 작품이 고루 망라되어 있다.

『함광헌고』의 소차는 대부분 대사간·대사성·예조참판 등의 여러 벼슬의 임명을 받고 올린 사직소들이다. 「언사차(言事箚)」는 1775년(영조 51) 당시 영부사(領府事)이던 김상복(金相福)의 탄핵을 요청한 내용이다.

『함광헌고』에는 당시 조정에 형성되어 있던 파당의 폐단과 실상을 파악하는 데 참고될 만한 기록이 다수 있다. 「묘만기(苗蠻記)」는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를 취하여, 간사한 무리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원인을 비유적 문체로 서술한 글이다. 「혜란대사전(慧蘭大師傳)」에서는 어려서부터 정명공주(貞明公主)를 모셨던 여인이 70여 세에 여승이 되어 득도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함광헌고』에는 자신이 1776년 편집한 『강도지(江都志)』의 발문 및 여러 문집에 넣은 서문 등이 실려 있다. 권1·2에 실려 있는 이중호의 시는 700여 수의 많은 분량으로, 수록의 경위는 알 수 없다. 작품 가운데 「소년행(少年行)」·「규중사(閨中詞)」·「패강곡(浿江曲)」·「종군행(從軍行)」 등의 고시 의작(擬作 ; 모방하여 만든 작품)이 많다. 감각과 재치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특히, 「의사곡체(擬詞曲體)」 연작을 비롯하여 「만강홍(滿江紅)」·「출새곡(出塞曲)」·「애련사(愛蓮詞)」 등의 작품에서 고시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알 수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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