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제학,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삼사를 두루 거치고 이조 · 호조 · 예조 · 병조의 참의를 거쳐 1760년에는 예문관제학 · 이조판서에 임명되었고, 호조판서 · 예조판서 · 한성판윤 · 홍문관제학을 지냈다. 1763년 11월에 우의정에 임명되었고, 1772년에 영의정까지 오르는 등 14년간 정승을 지냈다.
홍봉한(洪鳳漢)과 정치적 동지로서 이른바 북당(北黨)에 속해 평소 김구주(金龜柱)를 배척하는 데 철저하였다. 그리고 대체로 붕당을 비난하며 인정하지 않는 영조의 탕평책을 옹호하였다.
1775년 영조로부터 홍인한 · 정후겸(鄭厚謙) 등이 왕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아 세손을 해치려 한다는 서명선(徐命善)의 소를 평가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평소 당시 권신인 홍인한을 비난하는 쪽이었으나 모호한 답변을 해 정조가 즉위하자 바로 경상도 평해로 정배되었다가 곧 공주로 이배되었다. 이듬해에 귀양이 풀리자 고향인 결성에서 은거하면서 두문불출하였다.
겉으로는 평온하나 안으로 강해 큰 뜻을 가졌으면서도 시세가 계속되지 못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평소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로 유명하며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홍봉한 · 민백상(閔百祥)과 친교가 깊었다. 1800년(정조 24)에 신원되어 복관(復官)되었다.
『어제수덕전편(御製樹德全編)』을 편찬했고, 저서로 『통색문답(通塞問答)』 , 『직하잡록(稷下雜錄)』, 『직하고(稷下稿)』,「백암당대선사비명(柏庵堂大禪師碑銘)」 등이 전한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운석유고(雲石遺稿)』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영의정 임명 : 『영조실록』 119권, 1772년(영조 48) 10월 22일. "영의정 한익모를 파직하고 김상복을 제배하다"
-
주3
: 공주로 이배 : 『정조실록』 2권, 1776년(정조 즉위년) 9월 20일. "한익모를 연안부에, 김상복을 공주목에 이배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