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광주유수,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정조가 즉위하자 이 소는 당시 왕세손인 정조를 해치려는 음모로 비판되었고, 세칭 시벽당쟁(時僻黨爭)의 원인이 되었다. 1793년(정조 17)에 다시 서용되어 용궁현감이 되었으나 그 이상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1800년 6월 정조가 죽은 뒤 정순대비가 수렴청정하자, 이조참판 · 이조판서 · 광주유수를 거쳐 2년 만인 1802년에 우의정으로 기용되었다. 이때 심환지(沈煥之) · 정일환(鄭日煥) · 김달순(金達淳) 등과 신유사옥을 일으켰다. 또한 권유(權裕)로 하여금 김조순(金祖淳)을 공격해 순조와 순원왕후의 국혼을 방해하도록 유도하였다.
1804년에 정순대비가 다시 수렴청정을 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삭직되었다. 그 후 왕대비가 죽은 뒤 1806년에 사당(私黨)을 위해 정조의 뜻을 배신한 죄 및 삼간택(三揀擇)을 방해한 권유를 방조한 죄목으로 탄핵되어, 함경도 경흥으로 유배가는 도중 이원에서 죽었다. 뒤에 신원되었으며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은파산고(恩坡散稿)』
- 『전고대방(典故大方)』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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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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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우의정 임명 : 『순조실록』 4권,1802년( 순조 2) 10월 27일. "김관주·이시수·서용보 등을 승진 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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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추증 : 『순종실록』 4권, 1910년(순종 3) 8월 26일. "이간 등 57명에게 시호를 주고 이총 등 3명의 시호를 고쳐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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