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사정(士貞), 호는 겸산(兼山). 구종주(具宗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혁(具爀)이고, 아버지는 한성판윤 구택규(具宅奎)이며, 어머니는 홍우채(洪禹采)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구몽규(具夢奎)에게 입양되었다.
1743년(영조 19)에 주1에 병과로 급제, 지평(持平) · 장령(掌令)을 거쳤다. 당시 상신(相臣: 영의정 · 좌의정 · 우의정의 총칭)인 조현명(趙顯命)으로부터 황경원(黃景源) · 정실(鄭宲) · 윤광소(尹光紹)와 함께 문장의 자질을 높이 평가받았다.
1749년 이후 약 14년 동안은 주로 승지로 있으면서 왕실과 가까운 훈척 중의 인재로서 영조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1757년 채제공(蔡濟恭) · 조명정(趙明鼎)과 함께 어제편차인(御製編次人)에 뽑혀서 『열성지장(列聖誌狀)』을 편집하였고, 1791년(정조 15) 정조의 명으로 『무원록(無寃錄)』을 주2
이조를 제외한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치고, 1796년에 치사하여 봉조하가 되었고, 앞서 능천부원군(綾川府院君) 구인후(具仁垕)의 봉사손(奉祀孫)으로 능은군(綾恩君)을 습봉(襲封)하였다. 훈척의 집안으로 자주 공격을 받았으나 잘 처신해나갔으며, 정조연간에는 관직에 직접 간여하지는 않고 왕실의 행사에 힘을 쏟았다.
많은 서적들을 편집, 교정하여 『후기촬록(喉記撮錄)』 · 『전율통보(典律通補)』 · 『육상궁소녕원식례(毓祥宮昭寧園式例)』 · 『증수무원록대전(增修無寃錄大全)』 · 『증수무원록언해』 · 『어제고금연대구감(御製古今年代龜鑑)』 · 『영종어제속편(英宗御製續編)』들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