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1책. 목판본.
권수(卷首)에는 기자상(箕子像) 및 찬(贊)에 이어 치조선도(治朝鮮圖) · 진홍범도(陳洪範圖) · 정전도(井田圖) · 사당도(祠堂圖) 등 10개의 그림이 실려 있다. 수집된 자료들은 전(傳) · 녹(錄) · 논 · 기 · 찬(贊) · 부 · 사(辭) · 조(操) · 가(歌) · 시 등으로 분류해 제1권에는 전부터 논까지, 제2권에는 기부터 가까지, 제3권에는 시를 수록하였다.
전과 녹에서는 『사기』 · 『서경』 · 『예기』 · 『송사(宋史)』 등에서 기자에 관한 사실을 뽑아 수록하였다. 특히 녹에서는 고려시대 1102년(숙종 7)의 기자묘(箕子廟)의 설치에서 조선시대 1571년(선조 4)의 기자 하마비(下馬碑)를 설치하기까지, 우리 나라의 기자에 대한 입사(立祠) · 치제(致祭)의 기록을 담고 있다.
논은 공자 · 정자 · 주자 등의 논평을 모은 ‘성현론’과, 한비자(韓非子) · 사마천(司馬遷) · 이백(李白) · 김시습(金時習) 등의 논평을 모은 ‘제자론(諸子論)’으로 분류되어 있다. 기에서는 유종원(柳宗元) · 변계량(卞季良) 등이 지은 비문을 수록했으며, 찬 · 부 · 사 · 조 · 가 · 시에서는 도연명(陶淵明) · 동월(董越) · 권근(權近) · 서거정(徐居正) · 이이(李珥) · 김시습 등이 지은 시가를 수록하였다.
이 책은 16세기의 사림이 대거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성리학이 심화되는, 사상계 및 정치계의 전반적인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기자가 단순히 후조선의 시조요, 중화문화의 전수자였다는 점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기자가 도학정치의 핵심인 왕도와 명분 및 절의의 실제적인 구현자로서 떠받들여지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이는 『기자지』가 잡다한 자료를 일정한 체계가 없이 늘어놓아 기자에 대한 통기(統記)를 살필 수 없다 하면서, 『기자지』가 편찬된 해 다음에 바로 이를 정리한 『기자실기(箕子實記)』를 내놓았다.
윤두수는 평안도관찰사로 있던 1590년에 『평양지』를 편찬하면서 『기자지』를 증보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윤두수의 『기자지』와 이이의 『기자실기』를 함께 수록하고 부록 2권을 합편해 5권으로 간행하였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