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朴斗鎭)이 지은 시. 그의 첫 개인 시집인 ≪해≫(1949)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저자의 초기 시의 특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당대의 비관적인 현실이 ‘어둔’·‘밤’으로 표상되어 있으며, “아무도 없는”과 같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시의 배경 또한 자연이라는 점이 마찬가지이다. 그의 시에는 자연이 매우 중요한 소재이자 배경으로 나타난다. ≪청록집 靑鹿集≫의 <향현 香峴>·<연륜>·<도봉>·<별>·<설악부> 등처럼 전원 심상과 식물적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 시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시 <해>의 소재이자 배경은 ‘사슴과 칡범이 노니는,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자연사를 지배하는 근원적 힘을 의미하는 ‘해’의 상상력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해’는 어둠과 악을 몰아내는 정의와 광명의 표상이면서, 동시에 지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근원적인 생명력의 상징이다. 해가 ‘빛’과 ‘열(熱)’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함께 지닌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불의와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란 밤과 어둠의 장소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밝음으로서의 ‘해’에 대한 갈망과 기다림은 신앙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또한, 대자연의 법칙으로 미루어보더라도 밤이 가면 아침이 오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라고 하는 간구와 기도가 나타나게 된다. 해가 솟아야만 이 땅의 어둠도 물러가고, 자연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해>는 자연의 생명력과 그 섭리에 대한 옹호의 정신을 드러낸 것이며 역사의 아침이 도래하리라는 데 대한 신앙적 확신과 기다림을 ‘해야 솟아라’라는 갈망으로서 표출한 것이다.
일제하에서 우리 시의 복을 비는 정조가 ‘밤’과 ‘꽃’·‘달’의 상상력이 표상하는 소극적·여성적 세계에 머무른 감이 없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박두진의 시에 있어서는 이러한 우람한 ‘태양’이라는 남성적 상상력의 분출은 독보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