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세 시인이 공저한 시집 ≪청록집 靑鹿集≫이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간행되었는데, 이 시집의 이름에 의거하여 ‘청록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세 시인은 각기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나 율조를 달리하고 있으나, 자연을 제재로 하고 자연의 본성을 통하여 인간적 염원과 가치를 성취시키려는 시 창조의 태도는 공통되고 있다.
서정주(徐廷柱)는 이러한 공통점에 근거하여 ‘자연파(自然派)’라고 호칭한 바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광복 직전의 일제치하에서 쓰여진 것으로서 시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박목월의 향토적 서정에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이 살아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일제 말기 한국인의 정신적 동질성을 통합하려고 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그의 민요풍의 시형식도 그러한 민족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조지훈의 전아한 고전적 취미도 한국인의 역사적·문화적 인식을 일깨우는 뜻이 있으며,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일제치하의 민족의 굴욕을 극복하려 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에서 저항적 요소가 보이고 있음도 그러한 정신적 자세와 연결되고 있다. 박두진에 있어서 자연인식은 원시적 건강성과 함께 강렬한 의지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의 기독교적 신앙에서 빚어진 의연하고 당당한 의로움의 생활신념과 관계되고 있다.
<향현>에서 보이는 ‘침묵의 산에서 불길이 치솟는 심상’을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러한 신앙에 근거하여 일제시대의 민족적 수치를 극복하려는 기세를 읊은 것이라고 평가된다.
일제 말기의 단말마적인 국어말살정책의 상황하에서 우리말로써 펴낸 이 시집은, 민족의 역사적·문화적 동질성을 드높인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