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 역대 왕들의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던 사찰이다.
1157년(의종 11) 4월에는 중국에서 온 영의진(榮儀秦)이 이절을 고쳐 짓지 않으면 재앙이 있을 것이라 하여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행차하여 지세를 살폈으며, 1173년 5월에 의종이 죽자 그 진영을 이 절에 안치하고 의종의 원당(願堂)으로 삼았다. 그러나 1181년(명종 11)에 무신들이 의논하기를, 의종이 무인을 원수처럼 여겼으니 풍수설 상으로 볼 때 무(武)의 방위에 해당하는 이 절에 의종의 영정을 둘 수 없다 하고, 성 동쪽에 있는 오미원(吳彌院)을 선효사(宣孝寺)라 개칭하고 영정을 옮겼으며, 이 절은 중방(重房)의 원당으로 삼았다.
그 뒤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지만,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절터에 동서 약 200칸, 남북 약 100칸의 초석이 남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