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산 해안사 ( )

목차
불교
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봉명산(鳳鳴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역대들의 영정을 봉안하였던 사찰.
이칭
이칭
오미원(吳彌院), 선효사(宣孝寺)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봉명산(鳳鳴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역대들의 영정을 봉안하였던 사찰.
내용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 역대 왕들의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던 사찰이다.

1157년(의종 11) 4월에는 중국에서 온 영의진(榮儀秦)이 이절을 고쳐 짓지 않으면 재앙이 있을 것이라 하여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행차하여 지세를 살폈으며, 1173년 5월에 의종이 죽자 그 진영을 이 절에 안치하고 의종의 원당(願堂)으로 삼았다. 그러나 1181년(명종 11)에 무신들이 의논하기를, 의종이 무인을 원수처럼 여겼으니 풍수설 상으로 볼 때 무(武)의 방위에 해당하는 이 절에 의종의 영정을 둘 수 없다 하고, 성 동쪽에 있는 오미원(吳彌院)을 선효사(宣孝寺)라 개칭하고 영정을 옮겼으며, 이 절은 중방(重房)의 원당으로 삼았다.

그 뒤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지만,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절터에 동서 약 200칸, 남북 약 100칸의 초석이 남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
집필자
김위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