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제목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이다. 제목으로 보아 해인사 선안주원이라는 건물의 벽에 썼던 기록이며, 『동문선』 권 64에 수록되어 전한다.
이 벽기의 전반부에는 신라불교사에 관한 자료가 전하고 있다. 선덕여왕 때 지영(智潁)과 승고(乘固)가 중국유학을 다녀와 처음으로 대덕(大德)에 뽑혔다고 한 것은 다른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자료이다. 또한, 이 벽기에는 당시 신라불교의 여러 요소를 유가(瑜伽)·화엄(華嚴)·계율(戒律)·소승(小乘)의 넷으로 소개하였다. 이 글에 의하면, 순응대덕(順應大德)이 해인사를 창건한 것은 802년(애장왕 3)이다. 순응은 신림(神琳)의 제자로 중국에 유학해서 교(敎)와 선(禪)을 익혔고, 귀국해서는 국가의 선발함을 받았다.
해인사 창건에는 성목왕태후(聖穆王太后)의 도움이 있었으며, 순응이 입적한 뒤에는 이정선백(利貞禪伯)이 그를 계승하여 공을 세웠다. 창건 이후 100년 사이 승과에 5명이 뽑혔고, 3명이 연창(演暢)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었다.
이 벽기는 최치원이 쓴 또 하나의 기록인 「신라가야산해인사결계장기(新羅伽倻山海印寺結界場記)」와 더불어 해인사에 관한 초기 기록이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