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의 노래』는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김억의 시 「꿈의 노래」·「피리」·「내설음」 등을 수록하여 1923년에 간행한 시집이다. B6판으로 164면이다. 김억의 첫 시집으로 총 83편의 시를 9장으로 나누었고, 자신의 서문 2편, 이광수의 서문 1편이 실려 있다. 작자 서문에서 김억은 ‘바다’는 이 세상을, ‘해파리’는 그 세상에서 희로애락에 부대끼며 사는 자신의 삶을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다. 김억의 초기 시가 실려 있어 민요시에 몰두하기 이전의 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최초의 자유시 시집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가 있다.
B6판. 164면. 1923년 조선도서주식회사(朝鮮圖書株式會社)에서 간행하였다. 작자의 첫 시집으로 총 83편의 시를 9장으로 나누었고, 자신의 서문 2편, 이광수(李光洙)의 서문 1편이 실려 있다.
제1장 ‘꿈의 노래’에는 <꿈의 노래> · <피리> · <내설음> 등 12편, 제2장 ‘해파리의 노래’에는 <능금(林檎)과 복숭아> · <눈> · <십일월의 저녁>등 9편, 제3장 ‘표박(漂泊)’에는 같은 제목의 연작시(連作詩) 6편이 실려 있다.
제4장 ‘스핑쓰의 설움’에는 <하품론> · <입> · <아츰잠> 등 9편, 제5장 ‘황포(黃浦)의 바다’에는 <황포의 바다> · <참살구> · <사향 思鄕> · <꽃의 목숨> 등 14편이 실려 있다.
제6장 ‘반월도(半月島)’에는 <밤의 대동강가에서> · <강가에서> · <기억 記憶> 등 8편, 제7장 ‘저락(低落)된 눈물’에는 <저락된 눈물> · <우정 友情> · <탈춤> 등 6편, 제8장 ‘황혼의 장미’에는 <때> · <죽은 기억> · <낙엽> · <실제 失題> 등 10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제9장의 ‘북방(北邦)의 소녀’에는 <북방의 소녀> · <유랑의 노래> · <무덤> 등 9편이 각각 실려 있다. 부록이라고 명시된 마지막 장 ‘북방의 소녀’를 제외하고는 매장마다 헌사(獻詞)가 붙어 있다.
예컨대, 제1장은 ‘지하의 남궁 벽(南宮璧)에게’, 제2장은 ‘지하의 최승구(崔承九)에게’, 제3장은 ‘끝없는 길에 떠도는 무명초(無名草)에게’, 제4장은 ‘비통의 염상섭(廉想涉)에게’, 제5장은 ‘아우 홍권(鴻權)에게’, 제6장은 ‘평양의 김동인(金東仁)에게’, 제7장은 ‘옛마을의 P.R.S.에게’, 제8장은 ‘동경의 김정식(金廷湜)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한 실명(實名)의 인물들은 김억과 특별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다. 그는 첫 번째 자서 ‘해파리의 노래’에서 이 시집 제목이 주는 상징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바다’는 이 세상을, ‘해파리’는 그 세상에서 희로애락에 부대끼며 사는 자신의 삶을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광수도 서문에서, 이 시집의 시편들이 우리 민족의 아픔과 설움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시편들은 그가 두 번째 서문에서 밝힌바, 제9장 ‘북방의 소녀’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1921년에서 1922년 사이에 쓰인 것들이다.
그리고 시의 배열 순서가 아무런 기준 없이 임의적이라는 점, 제9장만 특별히 부록이라고 주를 단 것은 이들 시가 1915년에 쓰여져 다른 시편들과 시간적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 등이 밝혀져 있다.
이 시집은 그의 초기 시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민요시에 몰두하기 이전의 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즉, 1920년을 전후해서 자유시에 열중하였던 시기를 대변하는 만큼 철저하게 자유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시가 이별의 정한이나 슬픔과 같은 감상적인 내용을 자연의 소재에 의탁하여 읊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리하여 하늘 · 별 · 꽃 · 강 · 바다 등 자연이 대부분의 시적 소재로 등장하지만, 자연 그 자체가 존재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시인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로 머무를 따름이다.
지나친 주관의 노출, 감정의 과잉호소, 관념적인 표현 및 배경 묘사 등은 시의 정서적 긴장과 이미지의 형상화에 있어서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당시의 언어 표현이나 시 형태에 비추어보면 매우 참신한 것이어서 1920년대 초 시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특징들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작품으로 <가을>을 들 수 있다. 여기서 “거울을 씨서 노흔 듯한 수면(水面)”이라든지 “태양(太陽)좃차 혼자ᄯᅥ러저/구름 뒤에 숨어서 흐득여 울고 잇다.” 등은 당시의 수준으로서는 참신한 언어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이 아어체 시어로서 ‘엇서라’, ‘하여라’, ‘르라’ 등의 어미를 구사하여 이 무렵 시단에 널리 퍼지게 하였다.
또, 우리 신시사상 자유시로서는 최초의 시집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오늘의 안목으로 볼 때 만족스럽지 못한 일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 근대시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수행하였던 선구적 시집의 하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