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신라 말 고려 초에, 활동했던 굴산선문의 선승.
가계 및 인적사항
그는 출가 후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화엄학을 배웠다. 847년(문성왕 9)에 복천사(福泉寺)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굴산사(掘山寺)의 통효대사(通曉大師)를 찾아가 수년 동안 수행하였다. 870년(경문왕 10)에 당에 유학하여 보당사(寶堂寺) 공작왕원(孔雀王院)에 머물렀다. 당 의종의 생일을 맞아 입궐한 행적은 당에 온 포부와 목적을 의종에게 밝혀 신임을 얻었다. 그 후 오대산 화엄사로 가 문수보살(文殊菩薩) 앞에서 홀연히 신인(神人)을 만나 남방으로 갈 것을 권유받았다. 875년(헌강왕 1)에 성도(成都) 정중정사(靜衆精舍)에 가서 신라 무상대사(無相大師)의 영당(影堂)에 절하였고, 석두계의 석상경제(石霜慶諸)에게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찾아 중국 선종의 제6조인 조계(曹溪: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육조탑(六祖塔)에 절을 하기도 했다. 행적은 885년(헌강왕 11)에 신라에 돌아와 통효대사의 법맥을 이었다. 처음에 그는 김해부의 소충자(蘇忠子), 소율희(蘇律熙)의 후원을 받았다. 897년 효공왕이 즉위하자, 왕이 그를 경주로 불러들여 국사로 예우하였다. 915년(신덕왕 4)에 남산 실제사(實際寺)에 머무를 당시, 왕건이 행적을 방문하였다. 이후 명요부인(明瑤夫人)의 요청으로 석남산사(石南山寺, 봉화 太子寺)에 머물다가 입적하였다. 제자로 신종(信宗), 주해(周解), 임엄(林儼) 등 500여 명이 있었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원전
- 『조당집』
- 최인연(崔仁滾),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명(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銘)」(『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 1919)
단행본
- 김두진, 『신라 하대 선종 사상사 연구』(일조각, 2007)
- 추만호, 『나말 여초 선종 사상사 연구』(이론과 실천, 1992)
- 忽滑谷快天, 『朝鮮禪敎史』(春秋社, 1930)
논문
- 구산우, 「신라 말 고려 초 김해 창원 지역의 호족과 봉림산문」(『한국중세사 연구』 25, 2008)
- 최병헌, 「신라 말 김해 지방의 호족 세력과 선종」(『한국사론』 4, 197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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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에 있는 절.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 수다라전(修多羅殿), 법보전(法寶殿)에 8만 1258매의 대장경 경판을 소장하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중건한 것이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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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화엄종의 교의(敎義)를 연구하는 학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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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신과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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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한 종파의 조사(祖師)나 한 절의 창시자, 또는 덕이 높은 승려의 화상(畫像)을 모신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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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고려의 제1대 왕인 ‘태조’의 본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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