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남북국시대 나말여초 시기에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호족.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소율희 · 소충자 형제는 구 가야계 세력에 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율희가 자신의 이름을 김율희로 이름을 바꾼 사실에 더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가락국기에 수로왕의 제사와 관련하여 소율희가 등장한 것도 그러한 추측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들이 신라 왕실과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하였던 배경에는 이러한 사실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이는 신라 중대의 개창에 김유신계〔가야계〕의 활약이 컸다는 사실에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소율희 · 소충자 형제는 친신라적 입장을 견지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후삼국 쟁패 과정에서 견훤이 신라에 침입하고 고려가 성장함에 따라 신라가 급속히 쇠퇴하게 되고, 결국 이들도 역사의 무대에서 함께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 「광조사진철대사비(廣照寺眞徹大師碑)」
- 「봉림사진경대사비(鳳林寺眞鏡大師碑)」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
단행본
- 이문기, 『신라 하대 정치와 사회연구』(학연문화사, 2015)
- 조범환, 『나말려초 남종선 연구』(일조각, 2013)
- 김두진, 『신라하대 선종사상사 연구』(일조각, 2007)
- 전기웅, 『나말려초의 정치사회와 문인지식층』(혜안, 1996)
- 정청주, 『신라말 고려초 호족연구』(일조각, 1996)
논문
- 윤경진, 「신라말 고려초 義城府・甫城府 연혁에 대한 재검토」(『신라문화』 51,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8)
- 정청주, 「신라말, 고려초 해상세력(海上勢力)의 대두와 그 역사적 의미 -왕건의 해상세력(海上勢力) 장악을 중심으로-」(『역사학연구』 59, 호남사학회, 2015)
- 최영호, 「나말여초 김해지역의 對中國 해상교섭」(『석당논총』 5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
- 구산우, 「신라말 고려초 김해 창원지역의 호족과 鳳林山門」(『한국중세사연구』 25,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8)
- 김상돈, 「신라말 · 고려초 정치질서의 재편연구」(서강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 조범환, 「신라말 봉림산문과 신라왕실」 (『진단학보』 78, 진단학회, 1994)
- 최병헌, 「신라말 김해지방의 호족세력과 선종」(『한국사론』 4,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7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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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의 시기.
-
주2
: 9~10세기에 신라 말 고려 초의 사회변동에 따라 주관적 사유를 강조한 선종(禪宗)을 산골짜기에서 퍼뜨리면서 당대의 사상계를 주도한 아홉 갈래의 대표적 승려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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