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신라가 고구려 정벌 후 지금의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고구려 왕족 안승과 유민들을 이주시켜 세운 자치국 또는 보호국.
형성 및 변천
이후 681년(신문왕 원년)에 김흠돌의 난이 진압되자 보덕국왕 안승은 소형 수덕개를 보내어 평정을 축하하였는데, 보덕국이 신라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683년(신문왕 3) 10월에 보덕왕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키고 소판 벼슬과 김씨 성을 하사하면서 결국 보덕국은 성립 10년만에 소멸되었다.
보덕국이 소멸되어 고구려 유민의 공동체가 해체되자 안승의 족자인 대문이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난은 진압되고 대문은 처형되었다. 이후 주민들은 남쪽의 주와 군으로 이주되었으며, 보덕국은 금마군으로 편제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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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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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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