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선덕왕 대에 병든 노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봉양한 효자.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성각은 신라 중대 말에서 하대 초, 정확히는 선덕왕 대에 활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각의 효행을 왕에게 아뢴 사람들이 각간 김경신(金敬信)과 이찬 주원이었다고 하였는데, 혜공왕이 시해될 당시 경신은 이찬(제2관등)이었으므로 각간(角干, 이벌찬의 별칭, 제1관등)이 된 것은 그 이후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신이 선덕왕 사후 즉위하여 원성왕이 되었기에, 효행이 있었던 시기는 혜공왕 사후부터 원성왕 즉위 전이 된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1: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탐구당, 2013)
- 김두진, 『의상 그의 생애와 화엄사상』(민음사, 1995)
논문
- 김수태, 「『삼국유사』 ‘향득 사지’조로 본 신라인의 효행」(『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0,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9)
- 이현숙, 「신라의학사연구」(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1)
- 김두진, 「신라 의상계 화엄종의 '효선쌍미' 신앙」(『한국학논총』 15,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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