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는 나말려초(羅末麗初) 시기 지방 통치를 담당하던 신라의 지방관과 더불어 지방에서 성장한 반독립 세력인 호족(豪族)을 포괄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지방제도를 9주 체제로 정비하면서, 주-군-현-촌에 도독- 태수- 현령/ 소수- 촌주를 임명하여 지방통치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신라 말에 들어 왕위 계승 분쟁이 지속되고 지방 통제가 이완되면서 9주 체제의 도독제가 주(州)와 부(府)로 개편되어 지주제군사와 성주 중심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지방에서 성장한 반독립적 세력이 성주를 자칭하면서 지방관과 호족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한 변동은 헌덕왕 11년(819) 3월조 "도둑떼들이 여기저기 봉기하니, 왕이 모든 주와 군의 도독 및 태수에게 명하여 그들을 잡아 오게 하였다."는 기록이, 효공왕 9년(905) 8월조 "왕이 강역이 날마다 줄어든다는 말을 듣고 매우 걱정하였으나 방어할 능력이 없으므로, 모든 성주들에게 나가서 싸우지 말고 성벽을 굳게 지키도록 명령하였다."로 변한 모습에서 확인된다.
모든 도독과 태수가 모든 성주로 대체되어 성주가 지방관을 지칭하는 표현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략 진성여왕 대를 전후로 한 시기에 그러한 변화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