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 직관지 무관조에 따르면 오주서 군단이 모두 672년(문무왕 12)에 설치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산주, 하서주가 672년(문무왕 12)에, 우수주가 673년(문무왕 13)에, 청주와 완산주가 685년(신문왕 5)에 설치되어 모두 설치 시기가 다르므로 사료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군관 조직은 기병을 지휘하는 대대감, 기병과 보병을 각기 지휘하는 소감, 기병을 지휘하는 화척으로 편제되어 있어 기병 중심의 기보병 군단임을 보여준다. 우수주와 하서주는 군관 숫자가 누락되어 있는데, 청주, 완산주, 한산주에는 군관이 대대감 1인, 소감 12인, 화척 2인씩 각 군단에 배속되어 모두 15인으로 균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오주서에 모두 동일한 인원이 배치되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오주서와 관련하여 착금기당이 주목된다. 기병을 통솔하는 착금기당주, 착금감 등의 군관으로 편성된 착금기당은 오주서와 주둔지가 일치하고 있어 양자가 서로 밀접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오주서는 나당 전쟁기에 소백산맥을 축으로 전개된 공세적 방어전략에 따라 설치된 기보병 군단으로서, 외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던 신라의 군사전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