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신라 시대 문무왕대 활약한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로, 신문왕 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인물.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삼국사기』 신문왕(神文王) 즉위년(681) 조에 따르면, 신문왕이 태자로 있을 때 김흠돌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다고 한다. 신문왕이 태자로 봉해진 때가 문무왕 5년(665)이므로, 김흠돌이 대아찬으로서 대당장군(大幢將軍)으로 임명된 다음이다. 이 시기 태자의 장인이 될 정도로 중앙 정치와 군사 분야의 유력자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신문왕 원년(681) 8월 8일에 파진찬 흥원(興元), 대아찬 진공(眞功) 등과 함께 반란을 꾀하였다가 신문왕 1년(681)에 처형되었다.
평가
반란이 실패함으로써 신문왕비는 출궁되었고, 반란 가담자들은 모두 처형당하였다. 병부령으로 있던 이찬 김군관(金軍官)은 김흠돌의 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반란의 계획을 알고 고발하지 않았다는 불고지죄를 물어 그의 아들과 함께 자결하게 하였다. 신문왕은 이처럼 철저한 응징을 통해 중대 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이영호,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지식산업사, 2014)
- 金壽泰, 『新羅中代政治史硏究』(일조각, 1996)
논문
- 최홍조, 「神文王代 金欽突 亂의 재검토」(『大丘史學』 58, 1999)
- 李基白, 「統一新羅時代의 專制政治」(『韓國古代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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