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신라 말 고려 초, 구산선문의 하나인 수미산문을 세운 선승.
개설
이엄이 개창한 수미산문은 고려 태조의 적극적인 후원과 함께 해주 지역의 대호족인 황보씨(皇甫氏) 세력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이엄의 선사상은 그가 직접 가르침을 받고 법맥을 계승한 운거 도응의 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운거 도응은 석두 희천(石頭希遷), 약산 유엄(藥山惟儼), 운암 담성(雲巖曇晟), 동산 양개(洞山良价)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승려이다. 처음 이엄은 취미 무학(翠微無學)에게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는데, 취미 무학은 석두 희천, 단하 천연(丹霞天然)의 법맥을 이은 선승이었기에 동산 양개와 마찬가지로 석두계의 선을 공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500명이 넘는 운거 도응의 제자 중 도응의 법맥을 이었다고 이름을 남긴 사람은 31명에 불과하다. 그들 중 이엄, 형미(逈微), 여엄(麗嚴), 경유(慶猷), 운주(雲住), 혜(慧) 등 신라와 고려의 선승이 6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이엄은 수미산문을 세웠고, 여엄, 형미, 경유와 함께 사무외사(四無畏士)로 불렸다.
수미산문의 선승들이 석두계 선을 수용했다는 점은 신라 말 이후에 선의 사상적 흐름이 변화한 것을 보여준다. 당대 선을 대표하는 마조도일(馬祖道一)은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수행에 의해 미혹한 마음을 부처의 마음으로 전환할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이며, '일상의 모든 행위가 불성이 드러난 것(作用卽性)'이라 보았다. 이와 같이 수행이 필요 없고,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사고는 그것에 수반하는 실천의 형태로서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이상적 상태로 간주하는 평상무사(平常無事)'의 사상을 도출하게 된다. 그런데 당의 선종계에서 마조선이 표방한 이념이 절대화되거나 교종화되면서 수행을 경시하거나 수행을 부정하는 폐단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석두 계통의 선사들은 법성(法性), 불성(佛性) 등의 본래성과 모든 일상의 행위인 현실태(現實態)의 작용을 마음[心]의 아래에 무매개적으로 등치한 마조선을 비판하였다. 석두계는 현실태와는 다른 차원의 본래성을 새롭게 지향한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 최언위, 「해주광조사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海州廣照寺眞澈大師寶月乘空塔碑)」(『조선금석총람』, 조선총독부, 1919)
단행본
- 김두진, 『고려전기 교종과 선종의 교섭사상사 연구』(일조각, 2006)
- 김두진, 『신라하대 선종사상사 연구』(일조각, 2007)
- 조범환, 『나말여초 선종산문 개창 연구』(경인문화사, 2008)
- 추만호, 『나말여초 선종사상사 연구』(이론과 실천, 1992)
- 忽滑谷快天, 『朝鮮禪敎史』(春秋社, 1930)
논문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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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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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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