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31본산이 지정된 때에는 귀주사(歸州寺)의 말사였으며, 옥수암(玉水庵)이라고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쾌명(快明)이 창건하였다. 어느 날 산 밑에 사는 김진성(金振聲)은 산위에서 일을 하다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으나 얻을 수 없자 한 바위를 밀치고 보았더니 그 곳에서 샘이 솟아났으므로 그 샘을 옥수(玉水)라 하였다.
그 뒤 김진성은 쾌명을 초빙하여 창건의 뜻을 밝히자, 윤덕구(尹德久)의 아들 칠성(七星)과 김정응(金正鷹)·박현철(朴賢喆)·함필흥(咸必興) 등이 시주를 얻어 창건하고, 절 이름을 옥수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원지방에 한발이 심할 때 절 앞에 있는 큰 바위에 개를 잡아 피를 바르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는 전설이 전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