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조선 후기에, 스승인 허전의 학통을 이어 성호학파의 실학을 계승하였으며, 「심설」, 「사칠관견」, 「염설」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방산(舫山)
  • 순가(舜歌)
인물/전통 인물
  • 본관김해(金海)
  • 사망 연도1907년(고종 4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36년(헌종 2)
  • 출생지경상도 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명종 (동아대학교, 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방산문집 미디어 정보

방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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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스승인 허전의 학통을 이어 성호학파의 실학을 계승하였으며, 「심설」, 「사칠관견」, 「염설」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순가(舜歌), 호는 방산(舫山). 경상북도 선산군 임은(林隱: 지금의 구미시 임은동)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증 참찬 허조(許祚)이다.

29세에 허전(許傳)의 집지문인(執贄門人)이 되었는데, 허전은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황덕길(黃德吉)로 이어진 성호학파의 실학을 이은 인물이고 허훈은 허전의 학통을 이었다. 의병(義兵) 군수(軍帥)인 허위(許蔿)가 아우인데, 허위의 손자들은 모스크바에 허진(許眞), 타시켄트에 허선산(許善山) 등이 거주하고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허훈의 성리설에 관한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은 「심설(心說)」과 「사칠관견(四七管見)」이며, 실학과 유관한 것은 「염설(鹽說)」·「포설(砲說)」·「차설(車說)」·「패수설(浿水說)」·「해조설(海潮說)」 등이 있다.

허훈은 「사칠관견」과 「심설」에서 이이(李珥)의 성리설이 이황(李滉)의 견해와 다른 문제들을 비판하였고, 이황의 학문적 정통성을 재천명, 계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방산문집(舫山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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