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헝가리공화국(Republic of Hungary)으로, 1989년 10월 23일 헌법 개정으로 헝가리인민공화국(Hungarian People’s Republic)에서 바뀐 명칭이다. 면적은 9만 3028㎢, 인구는 989만 7541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마쟈르족으로 96.6%이며, 독일인이 1.6%, 기타 슬로바키아인과 남슬라브인, 루마니아인이 있고, 언어는 민족고유의 마쟈르어를 사용한다. 국민의 67.5%가 가톨릭교를 믿으며, 개신교 20%, 그리스정교 2.6%이다.
기후는 다습한 대륙성기후로서 봄·가을이 짧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 경제는 농업 위주였으나, 제2차세계대전 후 공업화에 주력하여 공업생산이 주도하게 되었다. 특히 광업·알루미늄공업·자동차·전자기기 등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주요 자원은 석탄·천연가스·보오크사이트 등이다.
2015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1,37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4450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의원내각제 성격의 공화제로서, 대의기구는 임기 4년의 국민회의(386석)가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당(HSPR), 청년민주연합(FIDESZ), 민주포럼(HDF) 등이 있다.
마쟈르족은 9세기 말 러시아로부터 이주해 왔으며 1001년 최초로 독립왕국을 창건한 뒤 13세기부터 몽고·터키·오스트리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간 화해협정이 성립, 헝가리는 내정상 독립을 회복하였지만 오스트리아 황제를 헝가리 왕으로 섬기는 이중군주국(Dual Monarchy)으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형태는 1918년 11월 합스부르크왕조의 해체 시까지 지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동시에 공산지도자 쿤(Kuhn Bela)의 주도하에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4개월만에 붕괴되고, 1920년 3월 왕정복귀 후 헝가리는 국토의 71%, 인구의 60%를 인접국에 양도하게 되어 유럽의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945년 4월 4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종전과 함께 소련 주둔군의 지원으로 공산당이 1949년 5월 정권을 장악하고 8월에는 헌법을 제정하여 스탈린식 강압정책을 채택하고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이후 헌법은 1972·1983·1989년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스탈린(Stalin, I. V.)이 죽은 뒤 온건한 나지(Nagy, I.) 수상이 등장하여 자유화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1956년 대규모의 반소인민봉기가 발생하자, 소련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였으며, 그 결과 나지는 축출되고 카다르(Kadar, J.)의 새 정부가 들어섰다.
카다르는 1967년 소련과의 우호조약을 20년간 갱신하는 등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낙후된 경제개발에 주력하여 1968년부터 여러 차례 경제개혁을 실시하였다.
카다르의 신경제제도는 경제정책의 지방분권화, 시장원리에 의한 가격체제, 노동자의 동기 부여, 서구와의 무역확대를 도모함으로써 동구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철저하고 광범위한 자유화정책과 민생중시정책이라 평가되었고, 실제로 경제체제의 진정한 전환을 가져온 유일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 동안 소련의 공산당을 그대로 답습한 헝가리 사회주의노동자당(1989년 10월 헝가리사회당으로 개칭)은 유일 합법정당으로서 실질적으로 국가와 정부를 통제해 왔으나 1989년의 헌법개정을 통하여 다당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이 헌법개정안은 국가원수를 기존의 대통령위원회라는 집단기구 대신 대통령 개인으로 바꾸고 의회에서 간선하도록 하고 있다.
외교정책의 기조는 중도좌경으로 1955년 유엔에 가입하였으며, 해체된 바르샤바조약기구(WTO)·공산권경제상호원조회의(CMEA) 등 기존 동맹권으로부터 탈피하여 전통 서유럽에로의 복귀를 국가의 최대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즉 범유럽 집단안보 및 협력체제에 참여하며, 중유럽협력구상(CEI)·중유럽자유무역협정(CEFTA) 등을 통해 주변 국가들과 정치·경제·군사적 유대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이다.
다만 인접한 루마니아와는 그 나라에 거주하는 마쟈르족(200만 명)의 지위문제를 놓고 불편한 관계에 있다. 또한 헝가리는 1990년 이래 경제정책의 핵심과제인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청산을 통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정착과 대외무역의 자유화를 정책기조로 각종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 중이다.
현재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부흥개발은행(IBRD), 세계무역기구(WTO), 국제경제협력기구(OECD) 등 경제 관련기구에 가입하여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8월 26일 한·헝가리 상주대표부 설치 협정을 체결하고, 같은 해 10월 25일 주 헝가리 한국상주대표부를 부다페스트에 두었으며, 12월 7일에는 한국 주재 헝가리상주대표부를 서울에 각각 설치하였다. 다음해 1989년 2월 1일 정식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같은 날 상주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시켰다. 헝가리는 동유럽 공산국가 중에서 한국과 정식 국교관계를 수립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1989년 11월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헝가리를 방문하여 항공협정과 관광협정을 체결하였다.
양국 간에는 1988년 12월 투자보장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89년 2월 무역 및 경제협력 협정, 문화 협정, 외교관·관용여권 사증면제 협정을 체결하고, 1989년 3월에는 이중과세방지 협정과 과학기술협력 협정을, 1989년 11월에는 항공 협정과 관광 협정, 1990년 11월에는 관세인하 협정, 1991년 1월에는 일반여권에 관한 사증면제 협정, 1991년 12월에는 건설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2005년 3월과 5월에는 경제협력 협정과 사회보장 협정을 각각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헝가리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4억 8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평판디스플레이, 의약품, 승용차 등이고, 수입액은 5억 1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원동기, 자동차부품, 곡류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274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대우전자·삼성전자·삼성전기·한국타이어·LG전자·벽산건설·현대중공업·한진해운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약 1,400명의 한국민 교민과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48년 11월 11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증진을 통하여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며, 1993년 현재 오스트리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측 간에는 1953년 9월 무상원조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58년 7월에는 방송 협정, 1963년 1월에는 통상 협정, 1970년 10월에는 영사 협정, 1974년 6월에는 보건협조 협정, 1984년 9월에는 과학기술 협정, 1984년 10월에는 문화교류 협정, 1985년 10월에는 무역 협정, 1987년 3월 식물보호 및 검료분야협력 협정과 농업분야협조 협정, 1996년 12월에는 과학원간 과학협조 협정을 체결하고, 2002년 7월에는 과학기술협조의정서를 교환하였다.
2014년 현재 북한의 대 헝가리 수출액은 2000 달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