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

  • 언론·출판
  • 문헌
  • 현대
서울에서 박치우가 좌익 계열에 동조하며 1946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준 (전 중앙대학교, 언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서울에서 박치우가 좌익 계열에 동조하며 1946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내용

B4판 2면제. 1946년 3월 25일 박치우(朴致祐)를 발행 겸 편집인으로, 이태준(李泰俊)을 주필로, 이원조(李源朝)를 편집국장으로 하여 서울 중구 황금정(지금의 을지로 2가)에서 창간되었다.

제1차미소공동위원회를 전후하여 좌익계열에서는 언론대공세를 취하였는데, 먼저 수적으로 많은 좌익신문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이를 동원하여 미소공동위원회 개최에 반대한 우익단체의 몰락·거세를 노렸는바 『현대일보』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들 과학자·소설가·시인·문학평론가들이 한데 뭉쳐 신문을 발행한 것은 그 창간사에서 내세웠듯이 ‘자유조선의 소리, 세계민주주의의 전령(傳令), 새나라 건설의 거울’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 신문의 편집경향 및 논조는 그와 반대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고,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 즉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에 현혹되어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상반되는 공산주의집단에 가세하여, 미군정을 비방하고 신탁통치안을 찬성하는 등 좌익활동의 전위노릇을 하였다.

마침내, 1946년 9월 6일 미군헌병의 수색을 당한 뒤 7일자로 「태평양방면 미군사령부 포고 제2호」 위반죄로 무기정간당하였다. 그간 이 신문은 이태준의 「불사조(不死鳥)」를 연재하였고, 시인 김기림(金起林)을 편집고문으로 초빙하기도 하였다.

그뒤 미군정 당국은 이 신문의 발행권을 대한독립청년단의 서상천(徐相天)에게 넘겨 발행하게 하였다. 이때의 사옥은 종로구 낙원동이었으며, 발행부수는 2만 5,000부였다.

참고문헌

  •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