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부산훈도로 가선대부의 위게를 받고 부호군을 역임한 역관. 학자.
개설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도이(道以), 호는 금곡(錦谷). 아버지는 현한일(玄漢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5년(숙종 31) 역과에 합격하고, 부산훈도로 재임 중에는 덕망이 높아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우니, 사람들이 훈도제(訓導制)가 실시된 뒤 처음 있는 일이라 하였다.
그 뒤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위계를 받고 부호군을 지냈다. 그는 시와 문장에 능하였고, 서예에도 뛰어나 초서와 예서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참고문헌
- 『통문관지(通文館志)』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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