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홍경원(弘慶院)이라고도 한다.
1021년(현종 12)에 형긍(迥兢)이 왕의 명을 받아 여행자의 보호 및 편의를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수행을 위한 장소로 보다는 원(院)의 성격이 많았던 사찰이다. 이 절이 세워진 성환역 부근은 교통의 요충지였지만, 인가가 멀고 갈대가 우거진 늪이 있어 강도가 자주 출몰하여 행인이 불편을 겪던 지역이었으므로, 현종이 형긍에게 명하여 절을 세우게 한 것이다. 창건 당시 득총(得聰)·장림(藏琳) 등이 형긍을 도왔으며, 현종은 강민첨(姜民瞻)·김맹(金猛) 등을 별감사로 삼아 함께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1016년부터 1021년까지 200여 칸의 건물을 세우고 봉선홍경사라고 사액(賜額)하였으며, 절 서쪽에 객관(客館) 80칸을 세워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 하고 숙소와 양식과 말 먹이 등을 마련하여 행인들에게 제공하였다.
1130년(인종 8) 8월묘청(妙淸)의 말을 따라 이 절에서 아타파구신도량(阿吒波拘神道場)을 27일 동안 개최하였다. 이 도량은 아타파구위 대장군, 즉 광신귀신 대장(曠神鬼神大將)이 말한 다라니를 외워 재난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법회로서 강종 때에도 이 절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도량문(道場文)이 전해지고 있다.
1177년(명종 7) 3월에는 망이(亡伊) 등이 이 절을 불태우고 승려 10인을 죽였으며, 주지승이 핍박을 받는 등의 변이 있었다. 1383년(우왕 9)한수(韓脩)가 이 절에서 축원하였다. 조선 초기에 절은 폐허가 되고 원만이 남았으므로, 절 이름을 따라 홍경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1026년에 최충(崔冲)이 지었던 봉선홍경사기를 새긴 비갈(碑碣:비석)인 봉선홍경사 갈기비만이 남아 1962년 국보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