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판사, 첨지중추부사, 동지성균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45년 금구현령으로 나갔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 삼군진무 겸 승문원교리(三軍鎭撫兼承文院校理), 1452년(단종 즉위년) 경상도도사를 거쳐 1453년 형조정랑이 되어 악공(樂工) 독두이(禿豆伊)의 강도사건을 가벼이 다루었다고 추국되었으나 용서받았다.
1455년(세조 1) 성균관사예가 되고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수원부사로 나갔다가 1461년 장령·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72년 (성종 3) 첨지중추부사 겸 동지성균관사에 발탁되고, 1478년 “오랫동안 성균관에 거하였으나 성취한 바가 없다.”는 비난을 받고 사직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인물이 출중하고 문학이 뛰어나 중용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왕씨의 외손이므로 용납되지 못하고, 한직(閑職)과 무직(武職) 만을 맡았다. 저서로는 『충음시고(蟲吟詩稿)』·『우국재집』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시·문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우국재집(友菊齋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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