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백(敬伯). 연천 출신. 아버지는 대사간 홍우서(洪禹瑞)이다.
1726년(영조 2) 사마시에 진사장원으로 뽑힌 뒤 1713년 혜릉참봉(惠陵參奉)이 되었다. 그 뒤 장악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석성현감(石城縣監)으로 있을 때 풍속을 바로잡고 군정(軍政)을 확립하며 기민을 널리 구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이 후 해주판관으로 승진하였다가 일시 파직되었다가 곧 바로 형조정랑에 복직되고, 진휼차사(賑恤差使)로 활약한 뒤 정선군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