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에 출가하였고, 930년(경순왕 4) 북산(北山) 마하갑단(摩訶岬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입조사(入朝使) 시랑 현신(玄信)과 더불어 당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귀국하였으며, 성종으로부터 대선사(大禪師)의 호를 받고, 목종으로부터 원광편조국사(圓光遍照國師)의 호를 받았다.
왕의 청에 의하여 봉은사(奉恩寺)에 머무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의 전송을 받으면서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개천산 정토사(淨土寺)로 옮겨 만년을 보냈다. 정토사에 머무른 지 몇 해 만에 입적하고 절 북쪽 석봉(石峯) 앞에 유골을 장사지냈다.
시호를 홍법(弘法), 탑호(塔號)를 실상(實相)이라고 하였다. 제자에 승통(僧統) 문업(文業), 대사(大師) 보수(保秀) 등 수십 명이 있다. 손몽주(孫夢周)가 짓고 1017년(현종 8)에 세웠던 비가 정토사터에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