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백(遠伯), 호는 이천(梨川). 관찰사 홍성민(洪聖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서익(洪瑞翼)이고, 아버지는 평안도관찰사 홍명구(洪明耉)이며, 어머니는 참판 신감(申鑑)의 딸이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고, 1641년 영릉참봉(英陵參奉)을 거쳐 동궁시직(東宮侍直)이 되었다. 164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보직되었고, 이어 춘추관·세자시강원·사헌부·사간원 등에서 관직을 지낸 뒤 성산현감(城山縣監)을 지냈다.
1650년(효종 1) 수찬으로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병조·공조·형조·예조의 참판을 지내고, 수원부사를 거쳐, 도승지를 네번, 대사헌을 세번, 대사간을 두번이나 지냈다.
1664년(현종 5) 지경연사(知經筵事)가 되고 호조와 병조의 판서, 우참찬·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1669년 우의정이 되었다.
일찍이, 그는 숙위(宿衛)가 허술한 것을 우려하여 정초군(精抄軍)을 조직하여 왕이 거둥할 때에 호위하게 하였는데, 이는 숙종 때에 와서 금위영(禁衛營)으로 개칭되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