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처량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헌,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북정(北汀)
  • 자회(子晦)
  • 시호정정(貞靖)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1683년(숙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참판|개성유수|대사헌|좌참찬|판중추부사
  • 출생 연도1607년(선조 4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갑주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북정유고 / 기노연후서 미디어 정보

북정유고 / 기노연후서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회(子晦), 호는 북정(北汀). 유학 홍천민(洪天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서용(洪瑞龍)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첨정 홍명현(洪命顯)이며, 어머니는 참판 정용(鄭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교·정언을 지내고, 1642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3년 예조정랑, 이듬해 해운판관이 되었다.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1647년부터 수찬·헌납·이조좌랑·교서관교리를 지내고, 1649년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1650년(효종 1) 도청(都廳)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그 해 해서지방의 암행어사가 되었다. 1654년부터 보덕·사간·동부승지·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거쳐, 그 뒤 승지·대사성·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668년 예조참판·개성유수, 1670년에 대사헌이 되었다. 현종이 죽자 빈전도감제조(嬪殿都監提調)가 되고, 숙종 때 제학·좌참찬·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북정집』이 있고, 시호는 정정(貞靖)이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