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장령, 사간, 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때 휘하 군사들이 불법으로 들깨를 무역하고 밤중에 성을 넘어 야인지역으로 들어가 도둑질하다 붙잡힌 사건이 일어나 파직되었다가 다시 장령에 기용되었다.
1494년 사간으로 있을 때, 흥덕사(興德寺)에서 불사(佛事)를 빈번히 열고 그 때마다 사족부인들이 남자들과 어울려 풍기가 문란하므로 이를 억제할 것을 진언하였다.
이어 성균관유생들의 불교배척상소가 지나치게 격렬하다 하여 벌을 주자는 조정의 여론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자고로 성균유생들은 언사(言辭)가 없으면 죄짓는 것으로 여겼음을 들어 그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1497년(연산군 3) 문신으로 활을 잘 쏘고 무예에 능하다 하여 온성부사에 임명되었다가 70살이 넘은 노부모를 모시는 자는 300리 밖의 수령에 임명하지 않도록 된 『경국대전』의 규정을 들어 간청하는 노모의 진언이 받아들여져 홍문관부제학에 제수되었다. 그 뒤 우부승지를 역임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정암집(靜菴集)』
- 『이악정집(二樂亭集)』
- 『허백정집(虛白亭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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