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홍명선(洪明善)·김교창(金敎昌)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 송산면사무소 앞에 모인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내걸고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28일에는 송산면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과 면서기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
이 날 오후 3시경 뒤따라온 일본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가 홍면 등을 강제로 연행하려 하자 시위군중은 일본경찰과 충돌하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순사부장이 권총으로 홍면을 쓰러뜨리고 주재소 방향으로 도망가자, 2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추격하여 살해하였다.
그 뒤 결국 일본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잔인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1982년 건국포장,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