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관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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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무
화관무
무용
작품
신무용 계열의 창작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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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무용 계열의 창작무용.
내용

신무용 계열의 창작무용. 1954년 11월 26일에서 28일까지 서울 시공관에서 개최된 김백봉무용발표회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고전형식(古典形式)을 효시로 삼는 이 무용은 1957년 현재의 이름인 「화관무」로 개칭되었다. 1930년 2월 경성공회당에서의 최승희(崔承喜) 제1회 귀국공연 때 연제의 하나였던 「영산무(靈山舞)」, 1941년 10월 일본 동경(東京)데이고쿠극장(帝國劇場)에서 개최된 최승희무용종합발표회에서 김백봉의 처녀출연 작품인 「궁녀무(宮女舞)」, 1947년 11월 평양에서 가졌던 김백봉무용발표회에서의 작품 「고전형식」 등을 공통의 흐름을 지닌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화관무」는 1959년 5월 김백봉의 원각사(圓覺寺) 공연에서는 ‘한삼(汗衫)에의 회정(懷情)’으로, 1970년 5월의 오사카 엑스포70 공연에서는 ‘수연(壽宴)’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이 밖에 국립국악원무용단공연을 위하여 김천흥(金千興)이, 국립무용단 · 한국민속예술단해외공연을 위하여 송범(宋范)이 각각 안무, 발표한 바 있다.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영산회상」 중 세령산 · 도드리 · 타령이다.

이 춤의 무복은 머리 위에 화관을 얹고, 조선시대의 전형적 무복의 하나였던 ‘ 몽두리’를 현대감각에 맞추어 고쳐 만든 이른바 주1에다 가슴띠[胸帶]와 통치마를 걸치고, 손목에 한삼을 끼운 차림이다. 특히, 1m 가량 처지게 된 여섯 가지 색상의 넓은 소매는 이 춤의 춤사위를 특징짓는 바탕이 된다. 예를 들면, 팔을 펴거나 굽혀서 오르내리게 하되, 위로는 어깨선에서 수평을 유지해야 하고, 아래에서는 다소곳이 앞에서 모아져야 한다.

또, 손목의 바로돌림 · 꺾어돌림 · 젖혀돌림 등을 이용하여 한삼을 뿌리거나 감아들이되, 그 힘이 팔 전체로 미쳐 소맷자락의 불필요한 요동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몸체를 중심으로 해서 한삼의 뿌림이 비껴방향(45°) 이상으로 수직화되어서는 안 된다. 즉, 꼭 필요한 대목을 제외하고는 항상 상체를 곧게 유지해야 한다는 체의 기본형과 더불어 이 춤이 차원 높은 품위를 간직하게 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 춤은 찬연한 귀태(貴態)와 화려한 무세(舞勢)를 보이는 궁중풍의 무용이다.

주석
주1

소매 폭이 넓은 두루마기나 철릭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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