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사

  • 역사
  • 유적
  • 조선 전기
  • 시도자연유산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정희 등 5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희태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정희 등 5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

내용

1993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사우는 1735년(영조 11) 경사에 능하며 예법을 지키고 청겸결백한 문절공(文節公) 정수충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에서 출발하였다. 1776년 사우 건립을 발의하여 1784년(정조 8) 정수충을 배향하였다.

1796년에 광주 유회소의 발의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광주 출신 충장공(忠壯公) 민제장, 1809년(순조 6)에는 충청도 유회소가 발의하여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제자로 충절을 지킨 묵은(默隱) 정희를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시에 제사를 폐하였다가 1905년 유림의 발의로 복설되었다. 1907년에는 충효가 출중한 광주 출신 약포(藥圃) 정오도를, 1910년에는 조선 세종대의 학자였던 문경공(文景公) 정초를 추배하였다.

건물 배치는 제향 구역과 강학 구역에 높이 차이를 두어서 조성한 전학후묘양식이다. 가장 뒤쪽 사당인 화담사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집이다. 그 앞에 내삼문인 양양문(洋洋門)이 있다. 동재인 청지재(廳之齋)와 서재인 영호재(悅乎齋)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맞배집이다. 그리고 외삼문인 입덕문(入德門)이 있다. 1993년 3월 20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 『문화재도록』(광주광역시, 1997)

  • - 『광주시의 문화유적』(광주직할시, 199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