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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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1720년, 문신이자 학자 신민일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이칭
  • 이칭화당선생집(化堂先生集)
문헌/고서
  • 간행 시기1720년
  • 권수제화당선생집(化堂先生集)
  • 권책수5권 3책
  • 소장처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 저자신민일(申敏一)
  • 저자 출생연도1576년
  • 판본목판본
  • 편자신임(申銋)
  • 표제화당집(化堂集)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정하정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
  • 최종수정 2025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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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화당집』은 1720년 문신이자 학자 신민일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증손 신임과 현손 신사철이 편집·간행한 5권 3책의 목판본이다. 시 328수와 사부·제문·서·기·논설·소차·계사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유배 생활과 관직 재직 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시는 칠언절구 중심이며, 잡저와 논설에서는 성리학 사상과 현실 정치를 아우르는 비판적 시각이 드러난다.

정의

1720년, 문신이자 학자 신민일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신민일(申敏一: 1576~1650)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공보(功甫), 호는 화당(化堂)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사마시를 거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장령, 사간원사간 등을 거쳐 대사성에 이르렀다.

서지사항

5권 3책의 목판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신민일의 증손 신임(申銋)의 편집을 거쳐, 1720년(숙종 46) 현손 신사철(申思喆)이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신임의 발문이 있다.

구성과 내용

권1에 사부(辭賦) 4편, 시 198수, 권2에 시 130수, 명(銘) · 잠(箴) · 상량문 각 1편, 제문 10편, 권3에 서(序) 1편, 기(記) 1편, 논(論) · 설(說) · 발(跋) 각 2편, 잡저 3편, 서(書) 1편, 소차(疏箚) 10편, 권4에 소차 11편, 계사(啓辭) 12편, 행장 1편, 잡저 1편, 권5에 별고(別稿)로 성리학에 관한 논의 3편, 춘추쇄설(春秋瑣說) 29편, 부록으로 포저답설(浦渚答說) 2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사부에는 1634년 강계(江界) 유배 시 이언적(李彥迪)의 위패를 모신 경현서원(景賢書院)을 배알하고 지은 「알경현묘사(謁景賢廟辭)」가 있다. 는 오언 · 칠언 고시, 오언 · 육언 · 칠언 절구, 오언 · 칠언 · 육언 율시, 오언 · 칠언의 순서로 각기 저작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특히 칠언절구가 많고 육언절구와 배율이 한 수씩 실려 있다.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으로 있을 때, 강계(江界)로 유배되었을 때, 영흥부사(永興府使)로 부임하였을 때, 전라우도경차관으로 내려갈 때,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었을 때 지은 시들이 특히 많다. 제문은 장인 성문준(成文濬), 김류(金瑬) 등에 대한 것이다.

는 조카 신황(申愰)을 위하여 지은 「연파정기(烟波亭記)」이고, 가운데 「사평(史評)」에서는 한나라 조조(鼂錯), 원앙(袁盎), 숙손통(叔孫通)을 예로 들면서 신하의 행위를 논하였다. 가운데 「화당설(化堂說)」은 소백산 아래 거처로 지은 화당(化堂)을 놓고 쓴 글이다. 이 화당에 대해서는 김상헌(金尙憲)이 「화당찬(化堂贊)」, 장유(張維)가 「화당설(化堂說)」을 지은 바 있다. 잡저 3편은 모두 1637년에 영남으로 내려가 상주 등지에서 지낼 때 지은 글이다. 서(書) 1편은 호남(湖南) 독포사(督捕使)로 내려가는 종형 신충일(申忠一)에게 보낸 것이고, 돈유초(敦諭草) 2편은 1641년 승지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소차는 저작 연대순 편차이다. 1621년 연서도찰방(延曙道察訪)으로 있을 때 마정(馬政)의 개선을 요구하며 올린 「논마정소(論馬政疏)」, 정묘호란 때 화의를 반대하며 올린 「강도행재상봉사(江都行在上封事)」 등이 있다. 계사에는 정원군(定遠君)의 추숭을 반대하여 피혐(避嫌)하면서 올린 여러 편과 승지로 있을 때 정무 관계로 올린 것 등이 실려 있다. 행장은 부친 신암(申黯), 묘지명은 장인 성문준(成文濬)의 것이다. 잡저로 정원군의 추숭과 관련하여 지은 「의례(議禮)」도 있다.

별고로, 성리학『춘추(春秋)』 등에 관한 설과 이와 관련하여 조익(趙翼)과 주고받은 글이 실려 있다. 맨 끝에 1720년에 지은 신임(申銋)의 발(跋)이 붙어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화당선생집(化堂先生集)』

  • 인터넷 자료

  • -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https://kyudb.snu.ac.kr)

  • -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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