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당집 ()

화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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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신민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20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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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신민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20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신민일의 증손 신임(申銋)의 편집을 거쳐, 1720년(숙종 46) 현손 신사철(申思喆)이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신임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5권 3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에 사부(辭賦) 4편, 시 198수, 권2에 시 130수, 명(銘)·잠(箴)·상량문 각 1편, 제문 10편, 권3에 서(序) 1편, 기(記) 1편, 논(論)·설(說)·발(跋) 각 2편, 잡저 3편, 서(書) 1편, 소차(疏箚) 10편, 권4에 소차 11편, 계사(啓辭) 12편, 행장 1편, 잡저 1편, 권5에 별고(別稿)로 성리학에 관한 논의 3편, 춘추쇄설(春秋瑣說) 29편, 부록으로 포저답설(浦渚答說) 2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어부(漁父)」는 낚시를 강물에 던져 놓고 돌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어부의 한가로운 정경에서 대도자연(大道自然)의 진면목을 깨달은 듯 은자에 대한 동경심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형은 오언·육언·칠언 각 체를 비롯해 장편고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소차 가운데 「논마정소(論馬政疏)」에서는 역참의 제도 및 현황을 지적하고, 그 개선을 주장하였다. 특히, 연서역(延曙驛)이 서로(西路)의 요충지임을 설명하고 호란 이후 황폐해졌다고 개탄하면서 마필을 늘려 활성화시킬 것을 건의하였다. 「헌부논재이의상차(憲府論災異擬上箚)」는 사헌부에 재직할 때 의작한 것으로, 당시 한재가 격심해 백성들의 생활이 참담하니 구휼이 시급하다고 보고하는 내용이다.

「강도행재상봉사(江都行在上封事)」·「논시세내수외양상봉사(論時勢內修外攘上封事)」 등에는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당시 화의를 반대하는 주장이 들어 있다. 「강전비지책상봉사(講戰備之策上封事)」는 병자호란 때의 패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전비의 충실뿐이라고 역설한 글로, 전술과 병기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논군안소(論軍案疏)」는 병자호란 이후 군율이 문란해졌음을 지적하고 그 대책을 건의한 것으로, 당시 국방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계사의 「논궁가면세계사(論宮家免稅啓辭)」는 왕족들의 면세 제도에 대해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법전에 규정된 면세 대상은 내수사전(內需司田)뿐이며, 이것도 사가(私家)에 지급되면 세금을 내야 한다고 궁가전에 대한 면세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정원계사(政院啓辭)」는 역질로 인한 백성들의 참상을 보고하고, 형옥사(刑獄事)의 공정한 시행을 위한 대책의 필요성을 건의한 내용이다.

별고의 「춘추쇄설」은 『춘추』의 내용에 관한 견해를 밝힌 글이다. 성리학에 관한 논문은 주로 중(中)·화(和)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성리학의 대가 조익(趙翼)과 토론한 내용이 부록되어 있다. 「중화도설(中和圖說)」은 성(性)의 원리를 중화설에 의거해 도상으로 그려 설명한 것으로, 심성론에 관한 저자의 견해가 집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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