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엄사 경내 대웅전 앞마당 서쪽에 있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이중기단에 오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지닌 석탑이다. 탑은 대웅전 석단 하단에 마련된 마당에 동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과 나란히 서 있으나 동탑과는 달리 이중기단 형식이며 하층기단부터 초층탑신에 걸쳐 조각상이 가득하다. 탑의 양식이나 조각상의 수법으로 볼 때 9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탑이 위치한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서오층석탑의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으나 동탑과는 달리 이중기단이며 하층기단면석, 상층기단면석, 초층탑신에 걸쳐 신장상을 조각하여 화려한 모습이다. 이 석탑은 1995년 8월에서 9월에 걸쳐 완전 해체수리가 진행되었다. 이때 1층 탑신 상면 사리공에서 청자병, 청동합, 수정옥, 불사리 22과, 백지묵서다라니경과 탑을 찍은 종이 등 8종 30여 점의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또한 상층 기단부 내에서도 소탑, 청동제불상틀, 수자, 칼 등 8종 4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어 불탑 내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로써는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특히 청동제불상틀은 소형 토불(土佛)의 틀로 9세기 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어 이 탑의 제작시기를 시사해 주고 있다. 이 사리장엄구들은 2002년 보물로 지정되어 화엄사에 보관되어 있다.
탑은 이중기단에 오층의 탑신을 지니고 있다. 기단부는 상하층 2단으로 되어 있다. 하층기단 여러 매의 장대석으로 탑구를 형성하고 중앙에 면석을 세웠다. 면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었는데, 우주나 탱주를 생략하고 각 면 3구씩의 안상을 새기고 그 내부에 십이지상을 새겨 넣었다. 십이지상은 중앙에 쥐[子]상을 새기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좌상으로 배치되었다. 하층갑석은 4매로 올렸으며 상단에 2단의 각형받침이 각출되었다. 상층면석은 동서면에 탱주가 새겨진 면석을 놓고 남북면에 중앙 탱주가 새겨진 면석을 끼워 넣은 ‘H’자형 결구법을 보이고 있다. 각 면석에는 탱주를 중심으로 좌우 1구씩, 4면 8구의 팔부중상을 입상으로 새겼다. 상층기단 갑석은 남북으로 이음이 있는 2매의 판석으로 올렸는데, 하단에는 부연이 있고 상면 중앙에는 2단의 각형받침을 각출하여 초층탑신을 받치고 있다. 갑석의 기울기는 미세한 편이며 모서리에 합각선이 새겨져 있다.
탑신부는 오층으로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되어 있다. 탑신부는 모두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는데, 초층탑신의 경우 면석에 각 면 1구씩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사천왕상은 창이나 검을 쥐고 있으며 북쪽 다문천왕은 왼손에 보탑을 쥐고 있다. 옥개석은 5층이 모두 하단에 5단의 층급받침이 있고 상단에는 1단의 각형받침을 두어 위층의 탑신을 받치고 있다. 옥개석 전각부의 반전이 다소 과장된 편이다. 상륜부는 노반석과 복발이 있고 그 위로는 원통형 석주를 세우고 최상부에 보주를 올려놓아 마무리했다. 탑의 앞면에는 장방형의 배례석이 남아 있는데, 상면에 3구의 연잎을 고부조로 새겼으며 측면에는 안상이 있다.
이 탑은 기단부의 점유 면적을 좁히고 오층의 탑신을 지녀 외관상 고준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기단은 신라 전형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하층갑석 상단에 받침이 2단 각형으로, 그리고 옥개석 상단에 2단의 받침이 1단의 받침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특히 신라시대 오층석탑으로 하층기단의 십이지상, 상층기단에 팔부중상, 초층탑신에 사천왕상의 부조가 나타나는 것은 유일한 예에 속한다.
이 탑은 좁고 높은 기단과 탑신의 외형에서 가파른 체감율을 지니고 있으며 옥개석 전각에 나타나는 처마 곡선 등에서 단아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상하층 기단부와 초층탑신에 새겨진 부조상을 통해 당시 불교도상의 변천과 조각수법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탑에서 발견된 여러 종류의 사리장엄구와 불상틀, 종이편은 신라시대의 조탑술과 사리봉안방식, 인쇄술 등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