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31본산이 지정된 때에 유점사(楡岾寺)의 말사였다. 1012년(현종 3) 원공국사(圓空國師)가 창건하여 아미타·관음·대세지의 삼존상을 봉안하였고, 1018년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그 뒤 1508년(중종 3) 불탄 것을 1512년 종수(宗修)가 중건하였으며, 1686년(숙종 12)에 석심(碩心)이 지장보살과 시왕상(十王像) 등을, 1716년 자관(自寬)이 극락전 후불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1748년(영조 24)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자, 1752년 도신(道信) 등이 극락전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1804년(순조 4)에는 관(官)에서 이 절의 승군 80인에게 영월군으로 가서 한 달 동안 나무를 운반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이 때 요사를 허문 재목 및 기와·토지·기물 등을 팔아 방 한 칸만 남게 되었다.
1863년(철종 14) 주불삼존과 불상을 석왕사(釋王寺) 향적암(香積庵)에 옮겨 봉안하였고 1893년(고종 30) 나한상과 시왕상을 석왕사로 옮겼다. 1901년 통천군수 이주하(李胄夏)가 어실각(御室閣)과 3문(門)을 건설하였고, 1926년부터는 주지 정재은(鄭在隱)이 복구를 위하여 노력한 결과 극락보전(極樂寶殿) 등 35칸의 건물이 신축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