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라고도 한다. 고려 공민왕 때 보인대사(寶印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577년(선조 10)선조가 묘를 쓰면서 이 절을 창빈의 원찰로 삼아 갈궁사(葛宮寺)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 절을 중창하고 조포사찰로 지정하여 해마다 포백(布帛)을 내렸다. 그뒤 1661년(현종 2)의 중수를 거쳐 1862년(철종 13) 운담(雲潭)과 경해(鏡海)가 중건하였는데, 이때 경해가 상축문을 봉안하였다. 또 1870년(고종 7)운담과 경해가 경파루(鏡波樓)를 세웠고, 1878년 주지 서월(瑞月)과 도감 경해가 큰 방을 중수하였으며, 1896년계향(戒香)이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다. 1920년원옹(圓翁)과 명진(明眞)이 큰 방을 중수하였고, 1936년 주지 유영송(劉永松)이 능인전(能仁殿)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종각·선실(禪室)·대방·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과 대방·요사채는 혜명(慧明)이 3년 만에 이룩한 건물이다. 이승만(李承晩)이 대통령시절 이 절에 들렀다가 “절이 없으면 내가 묻히고 싶은 땅”이라 한 곳이며, 설화로는 선조 때의 중신 이항복(李恒福)과 이덕형(李德馨)이 이절에서 과거공부를 하고 있을 때 변소의 측신(厠神)이 두 소년의 아랫도리를 움켜잡고 대감이라 불러서 장차 대감이 될 것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