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 때 소라현(召羅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황간으로 고처져 영동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 지금의 星州)에 속하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 1353년(공민왕 2)에 다시 경산부에 속하였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다시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충청도에 예속하고 1414년에는 청산(靑山)과 합하여 황청현(黃靑縣)이 되었다.
1416년에 각각 복구하여 현감을 두었고, 1593년(선조 26)에 현을 폐하고 청산현에 편입시켰고 1621년(광해군 13) 다시 현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충주부에, 다음해에 충청북도에 속하게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영동군에 편입되어 황간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소백산맥의 서쪽사면을 차지하여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산간분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삼도봉(三道峯)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는 장교천(長橋川)이 만드는 유역평야인 광평(廣坪)이 생활중심지였다.
당시에 이 지역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황간에서 추풍령을 넘어 성주·개령(開寧)과 연결되었고, 오도치(吾道峙)를 지나면 상주에 이르게 되고 정치(井峙)를 지나 청산과 종치(鐘峙)를 넘어 영동에 이르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이 지역에는 신흥역(新興驛)과 상촌창(上村倉)·외남창(外南倉) 등이 있었고, 눌이산(訥伊山)과 소이산(所伊山) 봉수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