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사수(士修). 1597년(선조 30)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정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 1월 청나라 군사가 강화도를 공격하자, 강화부중군의 직책으로 강화유수 장신(張紳), 충청수사 강진흔(姜晉昕), 장관(將官) 구원일(具元一) 등과 함께 강화도의 연미정(燕尾亭)에 주둔하여 적을 방어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갑곶진(甲串津)에서 전사하였다.
뒤에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특히, 1792년(정조 16) 정조는 그의 충렬을 기려 자손에게 벼슬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