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술조

  • 예술·체육
  • 인물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소년」, 「자화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칭
  • 토수(土水)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9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4년(고종 41)
  • 출생지경상북도 경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평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소년」, 「자화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내용

호는 토수(土水). 경상북도 경주에서 대부호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도일하여 1930년에 동경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개성의 호수돈고등여자보통학교와 개성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하였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작품을 할 수 있었으며, 관전(官展)인 조선미술전람회(鮮展)를 배격하여 참가하지 않았다.

민족적 이념을 내세운 재야단체전인 동미전(東美展)·협전(協展)·목일회동인전(牧日會同人展) 등에서 활약하였다. 1931년 동미전에 출품하여 크게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굴뚝소제부」, 같은 해의 「의사(義士)」 등의 작품으로 보아서 그가 경향적 작품에 잠시 치우쳤을 가능성이 깊으나 남겨진 작품이나 자료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대담한 브러시로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나 현재 전하여지는 대다수의 유작이 미완성인데다가 질이 떨어져서, 호암미술관 소장의 「소년」이라든지 개인소장의 「자화상」 등 격이 높은 작품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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