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창집 ()

유교
문헌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김택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5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김택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5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55년 김택술의 아들 김형관(金炯觀)과 문인들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노동(金魯東)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서지적 사항

본집 31권 15책, 속집 11권 5책, 합 42권 20책. 석인본. 속집은 미간행된 초고본(草稿本)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전북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본집 권1∼12에 서(書) 536편, 권13∼19에 잡저 101편, 권20에 서(序) 42편, 권21에 기(記) 32편, 제발(題跋) 20편, 명(銘) 15편, 잠(箴) 8편, 찬(贊) 4편, 혼서 5편, 자사(字辭) 24편, 애사 1편, 권22에 제문 37편, 고축 16편, 상량문 8편, 비문 5편, 권23·24에 묘갈명 30편, 묘지명 3편, 묘표 28편, 권25에 행장 19편, 가장 4편, 전(傳) 11편, 권26∼31에 시 1,336수, 부(賦) 2편, 사(辭) 1편, 속집 권1∼3에 서(書), 권4∼8에 잡저·서(序)·기·발(跋)·명·찬·혼서·묘갈명·묘지명·묘표·제문·고축·상량문·전, 권9∼11에 시·연보·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시와 산문 모두 방대한 분량이며 주제도 상당히 다양한데,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시와 서(書), 잡저이다. 시는 오언체·칠언체의 절구와 율시를 비롯하여 장편고체(長篇古體) 등 그 시형이 다양하다. 내용은 국난기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진실과 양심을 표현한 작품이 많다. 서(書)에는 스승 전우(田愚)를 비롯해 사우(師友)간에 주고받은 서찰이 많다. 경학과 성리학·예학 등에 관한 학문적인 논설이 주를 이룬다.

잡저 중 「기질성문답(氣質性問答)」과 「노화동이고(蘆華同異攷)」 등은 성리학에 관한 논설이다. 「기질성문답」에서는 기질성과 본연성(本然性)이 본래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전제하에 이(理)·기(氣)의 개념을 설명하였다. 「노화동이고」에서는 기정진(奇正鎭)과 이항로(李恒老)의 이기설에 있어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명덕(明德)·도심(道心), 정기(精氣)·신심(神心) 및 인물성(人物性) 등으로 비교하여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관조선사(觀朝鮮史)」는 고려 말에서 조선 철종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치란·득실을 논한 것으로, 춘추대의(春秋大義)에 입각하여 역사를 해석하였다.

속집의 「유설변(劉說辨)」은 조선 왕조가 망하게 된 원인은 사서삼경만 읽은 까닭이며, 500년 동안 유지해 온 것은 『대전통편(大典通編)』 때문이라고 한 유원표(劉元杓)의 말을 반박한 글이다. 사서삼경 중 치정(治政)의 대요(大要)를 열거하여 설명하면서 『대전통편』은 다만 사서삼경의 지류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또한, 청나라 량치차오(梁啓超)가 저술한 『음빙실(飮氷室)』이 국치 방책의 요람이라고 하나, 역시 사서삼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창동문답(滄東問答)」은 어느 과객과 나눈 문답을 기록한 것으로, 동서고금의 역사와 정치 제도를 논하고 있다. 이밖에 「상간재선생논학논리제편(上艮齋先生論學論理諸篇)」을 비롯하여 「독강목수록변(讀綱目隨錄辨)」·「완행일기(完行日記)」·「편복설(蝙蝠說)」·「관호남학보변(觀湖南學報辨)」·「배최면암일록(拜崔勉菴日錄)」 등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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