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석인본. 1831년(순조 31) 처음으로 목활자로 간행되었고, 1959년경에 중간되었다. 권두에 임헌회(任憲晦)의 서문이, 권말에 정재경(鄭在褧)과 후손 동규(東奎)·주진(周鎭)·동야(東野) 등의 발문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8수, 계(啓) 1편, 차(箚) 2편, 소(疏) 5편, 서(書) 5편, 유묵(遺墨), 권2∼4는 부록으로 연보·행장·묘지명·사실(事實)·제문·만시(輓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1568년(선조 1)에 올린 차에서는 조광조(趙光祖)는 순수한 진유(眞儒)로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학(學)을 천명하였으므로, 증직과 시호를 하사하고 아울러 문묘에 종사하여 사림들이 추향(趨向)하게 하여달라고 하였다.
또, 같은 해에 올린 차에서는 수령들이 탐욕을 하는 것은 조정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임금이 심법에 힘쓰고 마음을 바르게 하면, 정치도 따라서 바르게 되어 관리들의 탐욕이 자연히 없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시폐(時弊)를 진술한 소에서는 동서분당은 망국의 화근이 되므로 분당을 타파하여야 하고, 조정의 공론은 국가의 원기와 같으므로 이를 숭상하고 따르면 국가가 잘 다스려진다고 하였다. 이 밖에도 조광조를 문묘에 종사하여줄 것을 청한 소가 실려 있다.
이 소차들은 특히 당쟁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 부록 중 조광조의 문인록(門人錄)이 있으며, 성수침(成守琛)·백인걸 등 24명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