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봉화정씨문헌공파종회(奉化鄭氏文獻公派宗會)에서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성구용(成九鏞)의 서문이 있다.
2권 1책. 석인본. 성균관대학교 도서관과 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상은 소(疏) 2편, 계(啓) 36편, 발(跋) 1편, 권하는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말에는 한성판관·용인현령 등을 역임한 큰아들 정내(鄭來)에 관한 사적을 수록한 「용인공유적(龍仁公遺蹟)」, 직산현감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둘째아들 정속(鄭束)에 관한 사적을 수록한 「직산공유적(稷山公遺蹟)」이 첨부되어 있다.
「청도성내개통수로이비불우소(請都城內開通水路以備不虞疏)」는 1421년(세종 3) 한성부판사로 있을 때 올린 것이다. 1411년(태종 11)부터 추진되어 오다가 중단된 도성 안의 낙후된 목교를 석교로 대치하고 수로를 정비하여 수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다. 「청심온처안씨삭천환작소(請沈溫妻安氏削賤還爵疏)」는 1426년 형조판서로 있을 때 좌의정 이직(李稷), 우의정 황희(黃喜) 등 10여 명의 대신들과 연명으로 올린 글이다. 14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된 심온의 처를 신원시켜 줄 것을 청원한 내용이다.
계 중 1419년 충청도관찰사로서 비인현에 침입한 왜구의 전황을 보고한 「보왜입구계(報倭入寇啓)」·「보전황계(報戰況啓)」는 조선 초 대일관계를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청제염공계(請除鹽貢啓)」·「청각관치교수계(請各官置敎授啓)」·「청파청주판관연기현감계(請罷淸州判官燕岐縣監啓)」 등은 염세(鹽稅)의 경감, 지방 교육의 활성화, 직무를 태만히 한 청주판관 정재(鄭載)와 연기현감 변굉(卞宏)의 파출을 건의한 글이다.
「보견환한인계(報遣還漢人啓)」·「청금사채노감석계(請禁私採爐甘石啓)」·「청무역당약계(請貿易唐藥啓)」·「응지진선상노비구폐계(應旨陳選上奴婢救弊啓)」·「청형조증원계(請刑曹增員啓)」·「청경성경원방어지편의계(請鏡城慶源防禦之便宜啓)」·「청이동대은계(請以銅代銀啓)」·「청가감각사노자액수계 請加減各司奴子額數啓」·「청죄도망군인계 請罪逃亡軍人啓」 등은 대외무역·화폐법·노비제도·국방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삼봉집발(三峰集跋)」에서는 아버지 정도전(鄭道傳)의 문집을 간행한 경위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기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