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낙산사는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낙산의 관음굴에서 기도하여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유명한 관음도량이다. 이후 조선초 세조 때 학열(學悅)의 지휘 아래 크게 중창하였으며, 정희왕후가 세조를 위해 발원하여 1469년(예종 1)에 제작된 범종도 현존하고 있어, 이 무렵 관음보살상도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이곳의 대표적인 신앙의 대상이 바로 이 관음보살상으로,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다.
높이 112㎝로, 겉면에 마른 옻칠을 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높고 화려한 보관을 쓰고, 금속으로 만든 팔각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들고 왼손은 무릎 위쪽에서 각기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짓고 있다. 둥글고 원만한 얼굴과 부드러운 어깨선, 적절한 너비의 무릎 폭 등이 조화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안정감 있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얼굴은 사각형적인 형태이지만 부드럽고 둥근 턱선으로 부드러운 모습을 이루며,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엿보여 온화한 인상이다.
치밀한 장식이 새겨진 높은 보관과 목걸이, 팔찌 등 각종 영락장식이 어깨와 다리는 물론, 대좌 위로 늘어진 상현좌(裳懸座)의 옷자락 위로도 표현되어 장식성이 부각된 점, 단정하고 부드러운 자세, 섬세한 손가락 표현 등은 고려 말 이래의 전통을 이은 조선 초기의 보살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1333년 작 대세지보살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1395년. 보물, 1989년 지정),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1447년 중수, 보물, 1989년 지정), 문경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1516년 개금, 보물, 1989년 지정)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과 유사하다.
조선 초기의 보살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건칠상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고려에서 조선시대로 넘어오는 시대의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